로빈 욘트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로빈 욘트의 수상 경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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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워키 브루어스 No.19 | |
로빈 R. 욘트 (Robin R. Yount) | |
생년월일 | |
국적 | |
출신지 | 일리노이 주 댄빌 |
포지션 | |
투타 | |
프로입단 | 1973년 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3번 (MIL) |
소속구단 | 밀워키 브루어스 (1974~1993) |
수상 | 3회 올스타 선정 (1980, 1982, 1983) 2회 AL MVP (1982, 1989) 3회 AL 실버슬러거 (1980, 1982, 1989) AL 골드글러브 (1982) |
1. 개요 [편집]
2. 선수 경력 [편집]
태어난 곳은 일리노이주지만, 어릴 때 가족 전부가 캘리포니아주로 이사해서 거기서 야구를 배웠다. 그리고 1973년 드래프트에서 전체 3번으로 지명받아 밀워키 브루어스에 입단하게 되었다. 이 당시 밀워키는 창단 3년차의 신생팀이었고, 신생팀이 그렇듯이 딱히 롤모델이 될 선수도 없지만, 대신 자리는 널럴해서 1974년 만 19세로 메이저리그에 데뷔해 풀 시즌을 뛰면서 메이저리그 역대 만 20세 이전에 가장 많이 뛴 선수 기록을 가지게 되었다.
원래 포지션은 유격수다. 초창기는 수비도 별로고, 공격력도 신통치 않았지만, 행크 아론이라는 전설이 밀워키에 오면서 그의 지도를 받아 타격 실력이 늘어났다. 별 관심을 못 받는 팀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꾸준히 실력을 향상해서 골드글러브도 1회 수상할 정도로 나쁘지 않은 유격수가 되었고, 공격력은 동료인 폴 몰리터와 함께 최고의 테이블세터를 구축할 정도로 밀워키의 간판이 되었다.
그 결과의 결실이 1982년 리그 MVP 수상 및 팀의 사상 첫 월드시리즈 진출. 비록 월드시리즈에서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게 지면서 우승에는 실패했지만, 만년 하위팀 밀워키의 영광을 안겨준 시즌을 만들어 낸 주인공이 로빈 욘트였다. 이 해 욘트가 기록한 성적은 유격수로는 경악스러운 성적인 0.331 29홈런 114타점.
그 뒤 어깨 부상으로 인해 유격수 자리에서 송구가 힘들어지자 중견수로 전향했다. 하지만 중견수로서도 공격 실력은 여전히 괜찮아서 1989년에 다시 0.318 21홈런 103타점의 기록을 내며 또 다시 MVP에 올랐다. 메이저리그 역대 세 번째로 서로 다른 두 개의 포지션에서 MVP를 차지한 선수가 되었다.
어린 나이에 데뷔해서 안타 페이스가 빨라 만 30세 전에 이미 2,000안타를 돌파했고, 3,000안타도 만 37세 전에 이미 달성했다. 사실 은퇴 역시 말년의 기량 쇠퇴가 좀 빠른 편이라서 조기에 한 편인데, 만일 그가 40세 넘어서도 뛰었거나 적당히 기량을 유지했다면, 최소한 3,500안타는 기록했을 공산이 컸다. 은퇴를 겨우 만 38세에 했기 때문.
젊은 시절에는 비인기팀이고, 비전도 없는 밀워키의 사정에 절망해서 재능이 있었던 골프선수로 전향도 시도했지만, 결국 밀워키가 연봉도 올려주고 잘 설득해서 계속 야구를 했다. 그리고 나중에 스타가 된 후에도 밀워키를 떠나지 않고, 계속 밀워키에서만 뛰며 20년을 한 팀에서 보낸 선수가 되었다.
다만, 이 놈의 비인기팀 사정 때문에(...) 올스타전에는 겨우 세 번 밖에 나가지 못했다. 그래서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들어간 타자 중에서는 가장 적게 올스타전에 나간 기록이라고 한다. 아무래도 밀워키가 전국구 인기 팀은 아니다보니 벌어진 현상인 듯. 대신 밀워키 지역에서는 절대적인 사랑을 받는 선수다.
원래 포지션은 유격수다. 초창기는 수비도 별로고, 공격력도 신통치 않았지만, 행크 아론이라는 전설이 밀워키에 오면서 그의 지도를 받아 타격 실력이 늘어났다. 별 관심을 못 받는 팀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꾸준히 실력을 향상해서 골드글러브도 1회 수상할 정도로 나쁘지 않은 유격수가 되었고, 공격력은 동료인 폴 몰리터와 함께 최고의 테이블세터를 구축할 정도로 밀워키의 간판이 되었다.
그 결과의 결실이 1982년 리그 MVP 수상 및 팀의 사상 첫 월드시리즈 진출. 비록 월드시리즈에서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게 지면서 우승에는 실패했지만, 만년 하위팀 밀워키의 영광을 안겨준 시즌을 만들어 낸 주인공이 로빈 욘트였다. 이 해 욘트가 기록한 성적은 유격수로는 경악스러운 성적인 0.331 29홈런 114타점.
그 뒤 어깨 부상으로 인해 유격수 자리에서 송구가 힘들어지자 중견수로 전향했다. 하지만 중견수로서도 공격 실력은 여전히 괜찮아서 1989년에 다시 0.318 21홈런 103타점의 기록을 내며 또 다시 MVP에 올랐다. 메이저리그 역대 세 번째로 서로 다른 두 개의 포지션에서 MVP를 차지한 선수가 되었다.
어린 나이에 데뷔해서 안타 페이스가 빨라 만 30세 전에 이미 2,000안타를 돌파했고, 3,000안타도 만 37세 전에 이미 달성했다. 사실 은퇴 역시 말년의 기량 쇠퇴가 좀 빠른 편이라서 조기에 한 편인데, 만일 그가 40세 넘어서도 뛰었거나 적당히 기량을 유지했다면, 최소한 3,500안타는 기록했을 공산이 컸다. 은퇴를 겨우 만 38세에 했기 때문.
젊은 시절에는 비인기팀이고, 비전도 없는 밀워키의 사정에 절망해서 재능이 있었던 골프선수로 전향도 시도했지만, 결국 밀워키가 연봉도 올려주고 잘 설득해서 계속 야구를 했다. 그리고 나중에 스타가 된 후에도 밀워키를 떠나지 않고, 계속 밀워키에서만 뛰며 20년을 한 팀에서 보낸 선수가 되었다.
다만, 이 놈의 비인기팀 사정 때문에(...) 올스타전에는 겨우 세 번 밖에 나가지 못했다. 그래서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들어간 타자 중에서는 가장 적게 올스타전에 나간 기록이라고 한다. 아무래도 밀워키가 전국구 인기 팀은 아니다보니 벌어진 현상인 듯. 대신 밀워키 지역에서는 절대적인 사랑을 받는 선수다.
3. 명예의 전당 통계(Hall of Fame Statistics) [편집]
블랙잉크 | 그레이잉크 | HOF 모니터 | HOF 스탠다드 | |
로빈 욘트 | 14 | 120 | 132 | 52 |
HOF 입성자 평균 | 27 | 144 | 100 | 50 |
- JAWS - Shortstop (5th)
career WAR | 7yr-peak WAR | JAWS | |
로빈 욘트 | 77.0 | 47.2 | 62.1 |
유격수 HOF 입성자 평균 | 66.7 | 42.8 | 54.8 |
4. 은퇴 이후 [편집]
1999년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첫 턴에 입성했는데, 득표율이 3,000안타 돌파 선수 치고는 낮은 편인 77,5%다. 근데 이건 그가 못해서가 아니라 하필이면 같은 시기에 은퇴한 양반이 메이저리그 최다 탈삼진의 주인공인 놀란 라이언과 캔자스시티 로열스의 전성시대를 연 메이저리그 최고의 3루수 중 한 명인 조지 브렛과 겹치는 통에(...)[2][3] 이래저래 스포트라이트와는 영 인연이 없다.
그가 현역시절 단 등번호 19번은 당연히 밀워키 브루어스의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었다. 은퇴 후에도 야구계와 완전히 인연을 끊은 것은 아니어서 여러 차례 코치로서 메이저리그에 남았고 애리조나에서 2002년부터 2004년,2005년부터 2008년까지 각 벤치코치를 역임했었다.
2013년 8월 2일 대 워싱턴 전에서 은퇴 20주년 기념식 및 시구행사를 가졌다. 같은 밀워키 영구결번자이자 명예의전당 멤버인 롤리 핑거스도 자리를 같이했다. 또한 이날 욘트의 이름으로 $10000 가 소아암센터에 기부되었다고 한다.
그가 현역시절 단 등번호 19번은 당연히 밀워키 브루어스의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었다. 은퇴 후에도 야구계와 완전히 인연을 끊은 것은 아니어서 여러 차례 코치로서 메이저리그에 남았고 애리조나에서 2002년부터 2004년,2005년부터 2008년까지 각 벤치코치를 역임했었다.
2013년 8월 2일 대 워싱턴 전에서 은퇴 20주년 기념식 및 시구행사를 가졌다. 같은 밀워키 영구결번자이자 명예의전당 멤버인 롤리 핑거스도 자리를 같이했다. 또한 이날 욘트의 이름으로 $10000 가 소아암센터에 기부되었다고 한다.
5. 기타 [편집]
파일:attachment/로빈 욘트/Robinade.png
자신의 이름을딴 "Robinade" 라는 레모네이드 음료 사업에 참여 하기도 하는중.[4]
취미로 카/모터사이클 레이싱을 즐긴다고 한다.
파일:external/pds23.egloos.com/d0145495_5020952951697.png
온라인 야구게임 마구마구에 블랙,엘리트,레전드 등급을 모두 갖고있다. 전용 잠재력은 The Kid, 수비 시 스피드 +3,수비 +2다.
블랙과 레전드 모두 유격수 기본 포지션에, 멀티 포지션으로 중견수를 볼 수있다. 레전드에 경우 퀵 스로잉이 없는 관계로 유격수로만 사용하는 반면, 블랙 등급은 유저 성향에 따라 다르다. 18밀워키 자체 중견수인 케인을 사용한다면 유격수로 사용하는 반면, 대세로 떠오른 블랙 중견수 메타에 따라 중견수로 기용되는 경우도 많다. 이외에도 MVP시즌인 82년도와 89년도가 각각 유격수, 중견수 단일 포지션으로 출시되었다.
자신의 이름을딴 "Robinade" 라는 레모네이드 음료 사업에 참여 하기도 하는중.[4]
취미로 카/모터사이클 레이싱을 즐긴다고 한다.
파일:external/pds23.egloos.com/d0145495_5020952951697.png
온라인 야구게임 마구마구에 블랙,엘리트,레전드 등급을 모두 갖고있다. 전용 잠재력은 The Kid, 수비 시 스피드 +3,수비 +2다.
블랙과 레전드 모두 유격수 기본 포지션에, 멀티 포지션으로 중견수를 볼 수있다. 레전드에 경우 퀵 스로잉이 없는 관계로 유격수로만 사용하는 반면, 블랙 등급은 유저 성향에 따라 다르다. 18밀워키 자체 중견수인 케인을 사용한다면 유격수로 사용하는 반면, 대세로 떠오른 블랙 중견수 메타에 따라 중견수로 기용되는 경우도 많다. 이외에도 MVP시즌인 82년도와 89년도가 각각 유격수, 중견수 단일 포지션으로 출시되었다.
여담으로 게임 상에서 특이폼은 매우 구린편. 엉덩이를 빼고 상체를 숙인 타격폼 때문에 좌상단 타격존을 가려버린다.
파일:yountgrass.jpg
5살 연상의 형 래리 욘트가 있는데, 역시 야구선수였다. 휴스턴 애스트로스에 1968년 드래프트 5라운드에 지명된 투수였는데, 1971년 9월 15일 애틀란타 브레이브스와의 경기에 콜업되어 9회 투입 준비 중 불펜에서 몸을 풀다 팔꿈치 근육이 파열되어 메이저리그 데뷔가 좌절된다. 하지만 메이저리그 규칙상 경기 중 부상당한 투수는 타자를 상대하지 않더라도 경기 출장이 인정되기 때문에, 유일한 메이저리그 1경기 0이닝 0투구 선수로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되었다(...)
래리 욘트는 1976년까지 마이너리그 생활을 이어갔지만 이후 다시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오르지는 못했다. 1974년 밀워키로 트레이드되며 스프링 캠프에서나마 동생과 한솥밥을 먹기도 했다고. 이후 애리조나 지역에서 부동산 개발업자로 변신하여 인생 2막을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로빈 욘트는 형에 대해 야구에 대한 자세를 가르쳐 준 사람이라며 늘 고마워한다는 발언을 남기도 했다.
6. 연도별 기록 [편집]
역대 기록 | |||||||||||||||||
연도 | 소속팀 | 경기 | 타석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득점 | 타점 | 도루 | 볼넷 | 삼진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fWAR |
1974 | 107 | 364 | 86 | 14 | 5 | 3 | 48 | 26 | 7 | 12 | 46 | .250 | .276 | .346 | .622 | 0.8 | |
1975 | 147 | 607 | 149 | 28 | 2 | 8 | 67 | 52 | 12 | 33 | 69 | .267 | .307 | .367 | .674 | 0.1 | |
1976 | 161 | 690 | 161 | 19 | 3 | 2 | 59 | 54 | 16 | 38 | 69 | .252 | .292 | .301 | .593 |
| |
1977 | 154 | 663 | 174 | 34 | 4 | 4 | 66 | 49 | 16 | 41 | 80 | .288 | .333 | .377 | .710 | 2.4 | |
1978 | 127 | 545 | 147 | 23 | 9 | 9 | 66 | 71 | 16 | 24 | 43 | .293 | .323 | .428 | .752 | 4.4 | |
1979 | 149 | 626 | 154 | 26 | 5 | 8 | 72 | 51 | 11 | 35 | 52 | .267 | .308 | .371 | .678 | 2.5 | |
1980 | 143 | 647 | 179 | 49 | 10 | 23 | 121 | 87 | 20 | 26 | 67 | .293 | .321 | .519 | .840 | 6.1 | |
1981 | 96 | 411 | 103 | 15 | 5 | 10 | 50 | 49 | 4 | 22 | 37 | .273 | .312 | .419 | .731 | 4.5 | |
1982 | 156 | 704 | 210 | 46 | 12 | 29 | 129 | 114 | 14 | 54 | 63 | .331 | .379 | .578 | .937 | 9.8 | |
1983 | 149 | 662 | 178 | 42 | 10 | 17 | 102 | 80 | 12 | 72 | 58 | .308 | .383 | .503 | .886 | 6.4 | |
1984 | 160 | 702 | 186 | 27 | 7 | 16 | 105 | 80 | 14 | 67 | 67 | .298 | .362 | .441 | .803 | 5.3 | |
1985 | 122 | 527 | 129 | 26 | 3 | 15 | 76 | 68 | 10 | 49 | 56 | .277 | .342 | .442 | .784 |
| |
1986 | 140 | 595 | 163 | 31 | 7 | 9 | 82 | 46 | 14 | 62 | 73 | .312 | .388 | .450 | .838 | 2.4 | |
1987 | 158 | 723 | 198 | 25 | 9 | 21 | 99 | 103 | 19 | 76 | 94 | .312 | .384 | .479 | .862 | 3.2 | |
1988 | 162 | 696 | 190 | 38 | 11 | 13 | 92 | 91 | 22 | 63 | 63 | .306 | .369 | .465 | .834 | 5.5 | |
1989 | 160 | 690 | 195 | 38 | 9 | 21 | 101 | 103 | 19 | 63 | 71 | .318 | .384 | .511 | .896 | 6.3 | |
1990 | 158 | 683 | 145 | 17 | 5 | 17 | 98 | 77 | 15 | 78 | 89 | .247 | .337 | .380 | .717 | 2.0 | |
1991 | 130 | 571 | 131 | 20 | 4 | 10 | 66 | 77 | 6 | 54 | 79 | .260 | .332 | .376 | .707 | 0.6 | |
1992 | 150 | 629 | 147 | 40 | 3 | 8 | 71 | 77 | 15 | 53 | 81 | .264 | .325 | .390 | .714 | 0.9 | |
1993 | 127 | 514 | 117 | 25 | 3 | 8 | 62 | 51 | 9 | 44 | 93 | .258 | .326 | .379 | .705 |
| |
MLB 통산 (20시즌) | 2856 | 12249 | 3142 | 583 | 126 | 251 | 1632 | 1406 | 271 | 966 | 1350 | .285 | .342 | .430 | .772 | 66.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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